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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240302_겨울수양회_요나서를 듣고 본문

신앙생활/교육, 세미나

240302_겨울수양회_요나서를 듣고

NAMU. 2024. 3. 2. 23:57

-
쳇바퀴 같은 생활에 싫증이 나서일까 

퇴근 후 다양한 취미를 가지려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독서다

 

'휴머니즘과 테러'라는 책에서

신체를 가지는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폭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 뿐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기고, 지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소한의 폭력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뿐이다

 

 -
나에게 사랑은 치우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신경 쓰면 다른 것을 등한시하고

누군가를 배려하면 누군가는 배척하는 것

 

그 이면에는 준 만큼 돌려받고자 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바람이 있다

사랑은 나를 채우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요나서를 통해 내가 본 하나님은
요나도, 니느웨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방인 성읍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편협하고 배타적인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던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과 닮은

요나를 들어 니느웨로 향하게 하신다


 -
사랑의 하나님은

서로를 이해하시고 긴밀하게 협력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설교에서 들었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실망스럽고
타인을 알아가는 것은 두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존재는 폭력적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불편하고 힘들다

 

사랑하지 못하는 건

내가, 내가 사랑하려는 누군가가

죄인 됨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사랑할 수 있는 동력은

죄인된 자신과 타인의 모습

그 폭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영적, 정신적 성숙함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요나서를 통해 보여주신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솔직히 하지 않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모두 헤아리신 사랑

 

심해에서도 요나와 함께하신

어디에나 계시는 사랑

 

잎사귀 하나로 요나를 깨우치시는

대화하고 설득하시는 사랑

 

나에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그 사랑을 닮아가고자 노력해야겠다

 


 
--------요약
■3월 1일
기도 뒤에 가려진 우리의 착각
물고기 뱃속 = 스올 = 죽음
그 안에서 울리는 찬양의 내용
 
1. 은혜는 밑바닥에서 시작된다
완전한 실패, 고통, 무력감 뒤에 우리는 변하고 세워진다.
깨어졌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올라가는 방법은 내려가는 것.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려감이 있다.
다 끊어지고 예수님만 남아있을 때, 비로소 예수님만 있어도 되는 시간이 온다.
 
2. 밑바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뭔가 하는것,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은혜에 노출되는 상황이 중요하다.
밑바닥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자꾸 생각하라고 요청하시는 상황이다.
이는 (신6:5) 사랑은 감정만이 아닌 뜻(생각) = 지성으로도 사랑하라는 이야기다.
질문하고 부딫히라는 이야기다.
그러며 붙어있는 것이 믿음 -> 생각을 다하여 사랑, 자리지킴 -> 우리를 성장시킴
 
3. 기도 뒤의 우리의 착각
헤세드, 은혜
주는 사람은 줄 의무가 없고, 받는 사람은 받을 자격이 없다.
근데 주시는 것이다.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두려움. 택함 받기 위한 노력들에 너무 절여져서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저 주어진 것이다. 얻어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린 오해한다. 하나님이 잘해주고 응답해 주셔야지.
은혜를 의무로 생각한다.
 
4.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실제로 죽었고, 사흘동안 어둠에 계시다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요나는 은혜를 받았고, 예수님은 주셨다. 
그런 예수님을 볼 때 은혜를 알 수 있다. 같이 어둠속으로 들어가신다.
그 어떤 공로도 필요하지 않은, 사랑과 은혜를 주님께 구하며 나아가자.
 
 
■3월2일
1. 집요하게 붙잡으시는 하나님
반항하는 사람과 집요하게 붙잡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불순종한 상태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 값없이 주시는 은혜
-> 트레이너의 방식은 원하는 수준까지 더..더 끌어올리는 잔인함
 
2. 요나의 반쪽자리 순종
3일을 돌아야 하는 니느웨에서 요나는 하루만 머문다.
제대로된 메세지 없는 단 한문장만 남긴다.
마치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힘들어서 나머지는 pdf로 공유하는 것과 같은 것.
우리에게 반쪽짜리 순종은 뭘까. 
직장, 학교, 가정에서.. 상사와 교수의 말에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시간을 대충 떼운다.
우리가 쓰는 시간과 마음의 질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요나는 마음 없이 대충 한다.
 
3. 순종과 회개를 보여주시는 하나님
용서를 말한적 없는 요나.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고 소망을 찾는다.
요나의 한마디를 묵상하며, 용서의 실마리를 찾고, 돌이킨다.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좀 돌이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돌이키신다.
니느웨를 통해 북 이스라엘에 말씀하신다.
앗수르를 통해 두드리시며 돌아오라는 하나님.
그런 이스라엘의 영토회복을 전하던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서
억지로 말씀을 전해도 대충한 몇마디에 니느웨가 회개했다는걸 보여준다.
 
하나님은 타인의 회심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타인을 통해 나에게 도전하실 때가 있다.
 
나중엔 니느웨 사람들이 우리를 정죄한다. (마 12:21)
 
4. 요나의 2수
상처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냉담함이다.
차갑게 대하고 깎아내린다. 그렇다고 회복되는건 아니다.
 
5. 하나님의 3수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천국가는게 맞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살기 싫다고 욕하는 요나
하나님은 그런 요나와 대화하신다. 낮아지신다.
낮아지기 싫어하는 우리와 다르게 아기까지 낮아져서 우리를 설득하신다.
심판하시는 주님이 용서하시는건 불의한게 아닙니까?
공의와 용서는 공존가능한건가?
예수님은 악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죽으신다.
상처 준 사람, 그 모든 악을 주님이 받아내신다. 공의와 사랑은 십자가에 모두 있다.
 
해달라는거 다 해주면 사랑일까.
라면 먹고싶다고 라면만 먹으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
예수님을 먼저 알지 않으면 다음으로 가지 못하는게 가혹하지만,
십자가가 가장 큰 폭력이 아닌가. 이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자.